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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받고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16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사진은 2017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열린 음반 제작발표회에서 길 할머니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지난 16일 향년 97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길 할머니는 13살이던 1940년 중국 만주의 위안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1년 뒤 성병을 얻어 귀국했지만,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도우려 1942년 중국에 갔다가 허베이성 위안소에 다시 동원됐습니다.
길 할머니는 1998년 10월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고, 이후 피 2금융권대출신청 해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습니다. 할머니의 별세로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습니다.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95.7세로 96세 이상이 5명, 90~95세가 2명입니다.
인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 싸워 온 길원옥 할머니의 생애를 돌아봤습니다.
지하철 8호선 연장
“이제 내가 죄인이 아니란 걸 알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지난 16일 오후 향년 97세 일기로 별세했다. 17일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 빈소가 마 당좌대월이자율 련돼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으로 그중 7명이 생존해 있다. 90~95세가 2명, 96세 이상은 5명, 평균연령은 95.7세다. 연합뉴스


길 할머니는 오랫동안 세상을 피해 숨어살았습니다. 1991년 여름,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최초로 밝힌 고 김학순 할머니 등과 다르게, 길 장소 할머니는 수년이 더 지난 뒤에 겨우 피해를 털어놨습니다.
▶“이제는 내가 죄인이 아니란 걸 알아요”

“텔레비전에서 한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을 막 욕하며 우는 걸 봤어요. 그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유, 창피하게 왜 저래. 정작 이야기할 사람은 가만 있는데…’라고 중얼거렸어요. 우리 며느리가 아주 눈 lh주택공사 대학생 치가 빠르고 야무진데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그날밤에 절 다그치는 거예요. 그날 아들, 며느리랑 밤새 울면서 난생 처음으로 제가 위안부 출신이란 걸 밝혔어요. 60년 가까운 세월을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꽁꽁 담아두었던 사연을…. 너무 부끄럽고 아파서 차마 잠꼬대로라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거든요.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냐고 아들이 더 울대요.”

그는 수십년 전 겪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열세 살 때였어요. 평양에 살았는데 고물상을 하시던 아버지가 물건을 잘못 구입해 잡혀들어가셨어요. 그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다가 끌려갔어요. 처음에 도착한 곳은 만주였어요. 뭘하러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어요.
철부지라 참을성이나 눈치가 없어서 더 힘들고 고생했어요. 싫다고 반항하고 아프다고 도망가니까 일본군들이 발로 차고 때리고. 칼집으로 머리를 내려쳐서 머리가 깨졌는데 피가 얼마나 많이 났는지… 옷이 피범벅이 돼서 벗겨지지 않아 찢어서 벗겼지요.
가자마자 성병에 걸렸어요. 그런데도 계속 약 먹으며 일본군들을 받아야 했지요. 한번도 바깥구경을 못했어요. 위안소에 틀어박혀서 하루에 스무 명 이상의 일본인에게 당하기만 했죠. 가만히나 있나요. 술취하면 칼로 여기저기 찌르고 후벼파고. 얼마 후엔 중국 본토로 옮겨갔어요. 그러다 해방이 되었는데 인천행 배를 타고 왔어요.”




수요집회에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 경향신문 자료사진


18살 때 해방을 맞이하고 1946년 인천항으로 돌아온 길 할머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충남 천안 등에서 돈을 벌었지만, 남북 분단으로 결국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피해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끝없이 외치고 행동했습니다. 길 할머니는 2003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하며 매주 수요시위에 참여했습니다. 2014년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실을 찾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150만명의 서명을 전달했고,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해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또 호주, 캐나다, 미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알리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2007년 11월6일(현지시간) 길 할머니는 네덜란드의 엘렌 판 더 플뢰그,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 등 다른 국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회에서 피해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추진하는 유럽의회가 마련한 청문회 자리에서 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으니 몸이 아픈데도 여러분들의 힘을 빌려 죽기 전에 소원을 풀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위안부 할머니 유럽서 일본 만행 고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16년 3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18일 미국 국무부 청사 앞에 선 길원옥 할머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의 전신) 제공





2016년 8월 26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에서 길원옥 (왼쪽부터)·김복동 할머니가 정부의 ‘위로금 1억원’ 지급 방침에 반발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5년 12월28일 당시 박근혜 정부가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엔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듬해 김복동 할머니 등과 함께 12·28 합의 이후 설치된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했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결국 2019년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습니다.
일본 정부를 향해서도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했습니다. 2019년에는 퇴위를 앞둔 아키히토 일왕에게 전하는 편지를 경향신문에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친필 편지. 정의기억연대 제공


▶일본 상대 ‘위안부 손배소송’ 첫 재판…길원옥·이옥선·이용수 할머니 “일본 당당하면 재판 나와라”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에게···“저는 위안부라 불렸던 길원옥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 한국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우리 후손들은 나 같은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

길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해 왔습니다. 그는 2012년 김복동 할머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을 받으면 고통받고 있는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며 ‘나비기금’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9월 1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길원옥·김복동 할머니가 참석하고 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된 수요집회는 이날로 1300회째를 맞았다. 김창길 기자


2017년에는 독일에서 성폭력 피해자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내가 겪은 아픔은 마음으로 참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해결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도록 계속 알리고 싸워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은 나 같은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 힘들지만 함께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해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국내 여성활동가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길원옥여성평화상’을 만들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가 2015년 4월 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길 할머니는 예술적인 면모도 아낌없이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가수의 꿈을 90이 넘어서 이뤘습니다. 2016년부터 길 할머니는 ‘한많은 대동강’ ‘남원의 봄 사건’ 등 애창곡 15곡을 직접 부른 앨범 ‘길원옥의 평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는 음반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90살 먹은 늙은이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어떨 때는 좀 나이먹어서 주책 떠는 거 아닌가 해요.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까, 남들이 싫어하건 말건 노래하는 게 직업이다 싶어요.”

2016년엔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 ‘평화의 소녀상’ 이미지와 함께 직접 쓴 필체를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길 할머니는 의사의 권유로 1년 정도 배운 서예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나를 잊으셨나요?’란 메시지에는 피해자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2015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에 관한 안타까운 심경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요집회 1000회째를 기념하며 2011년 12월 14일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에도 길 할머니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만든 소녀상의 표지석에는 길 할머니가 직접 쓴 문구가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




2016년 2월 28일 서울광장과 마주한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 ‘평화의 소녀상’ 이미지와 함께 길원옥 할머니의 메시지가 걸렸다. ‘나를 잊으셨나요?’란 글귀는 길 할머니가 직접 쓴 필체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서울시 제공





2021년 3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소녀상 위로 비가 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리를 기억하세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 5명 자전적 연작 ‘리멤버 허’ 출간
▶길원옥 할머니 ‘위안부’ 아픔 딛고 가수 데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019년 1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현지 주민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서 언급한 길 할머니의 인터뷰에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각이 잘 드러납니다.

내가 “일본에 저렇게 피해가 커서 어떡하냐”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일본 생각만 해도 밉지 않으냐고요. 사실 일본이 밉기로 치면 나만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13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6년 동안 악몽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죽은 것만도 못한 날들이었죠.
우릴 이렇게 만든 일본 정부는 70년 동안 사과 한마디 없어요. 우리를 이렇게 못 살게 만들었으니 일본도 폭삭 가라앉아 버려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 안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TV에서 너무 참혹하고 슬픈 광경을 보니까 내가 당한 건 잠시 잊어버렸어요. 아이구, 아이구, 저걸 어떡하나. 몸과 마음이 성한 데가 없지만 마을 전체가 떠내려가고 발전소가 폭발한다는데, 내가 아프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세상에 그런 무서운 난리가 어디 있겠어요. 옛날 우리네들이 당할 때는 이보다 더 큰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더 무서운 일도 생기네요. 사람이라면 그런 참사를 보고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일본에 가서 집회를 하다 보면 꼭 “너희가 원해서 돈 벌러 가 놓고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전 진심으로 얘기하죠. 13세 된 어린 계집애가 뭘 알아서 제 발로 그런 험한 곳에 가겠느냐고. 이 길원옥이가 한국인이 아니라 당신네 할머니나 엄마라고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면서 저를 끌어안는 사람도 있고, 제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아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고통에 빠져 있는지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그 사람들이 단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더 빨리 쾌유하기를 빕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지금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죠.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일본 참사’ 소회
▶“살아, 응어리 풀 수 있을까” 위안부 피해 길원옥 할머니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