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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수 기자]
#1
4개월째 머물고 있는 이 숙소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의 옥상이었다. 안티구아 도심의 남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으면서 이름조차 없는 이 숙소는 도보 20분 정도면 안티구아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유가 옥상의 끌림만큼은 아니었다.

성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이 단층인 이 도시에서 이 허술한 단층 옥상에 처음 올랐을 때 눈에 들어온 풍경은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하는 것이었다. 남쪽으로는 아구아 화산(Volcán de Agua)이, 골짜기 하나를 건너 서쪽으로 할인반환금 는 푸에고 화산(Volcán de Fuego)과 아카테낭고 화산(Volcan de Acatenango)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 보면 주거지 끝자락 북쪽과 동쪽으로 주택들 지붕 위로 내민 성당들의 흰 돔과 종탑들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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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에고 화산 옥상에서 본 푸에고 화산(Volcan de Fuego)의 분화 모습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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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는 바로 옥상으로 간다. 정원의 큰 벤자민고무나무에서 잠을 자는 수십 마리의 그래클(Grackle)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먼저 옥상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싱싱한 오레가노나 민트 잎 두어 장을 따서 씻은 다음 끓는 물에 넣어 우 세금체납 려낸 한 컵의 차와 함께 두어 시간씩 혼자의 리추얼을 즐긴다. 주로는 화산을 향해 명상하고 어학공부를 한 뒤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온다.
#2
늘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여행자에게 '며칠'은 떠나는 날을 의미하고 '몇 시'는 그날의 버스 출발 시간을 의미한다. 가족의 생일날과 함께할 식사 시간으로 기억 국민은행주택담보대출한도 하던 정주의 날들과는 다른 시간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안티구아에서의 지난 4개월은 참 여유로웠다. '며칠'과 '몇 시'가 떠날 날과 시간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캐나다에서 오신 놀튼과 제니퍼 부부가 콜롬비아로 떠나는 것을 배웅하면서 우리도 그들과 같은 여행자라는 것을 상기했다. 방으로 돌아온 뒤 우리가 떠나야 할 날은 언제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정주는 떠나는 것보다는 달큼하고 편안해서 떠날 것을 잊어버리면 날갯짓보다 걷는 것이 편해서 결국 비행 능력을 잃어버린 뉴질랜드의 카카포(Kakapo) 앵무새처럼 될 게 뻔하다.

그래서 막연하나마 떠날 시기를 정했다. 스노우버드들(북미의 북부 사람들이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부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옮겨 생활하는 계절적 이주자들)이 북쪽으로 떠나는 때로...











▲ 캐나다에서 온 스노우버드 부부 며칠 전 캐나다에서 오신 놀튼과 제니퍼 부부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면서 우리도 그들과 같은 여행자라는 것을 상기했다.


ⓒ 이안수




#3

어제, 아내는 변함없이 이른 아침 옥상을 홀로 누리다가 아침 식사 시간쯤에 방으로 왔다.
"한 시간을 펑펑 울었어요."
아내의 말에 놀라 의자를 돌려 고쳐앉으며 아내의 눈을 마주 보았다. 뜸을 두었던 아내가 충혈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요.""수시로 영상 통화를 하는데..."
"손도 잡아보고 싶고 허그도 해보고 싶고 함께 밥도 먹고 싶어서..""언젠가는 그럴 텐데..."
"지금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요. 또 언니들도 보고 싶고 동생들도 보고 싶고... 언니는 나이가 많잖아요."
이렇게 혈육들이 그리워 한참을 울고 나니 점차 울음이 시들해졌으나 다시 더 울고 싶어서 남편이 먼저 죽고 홀로 남은 상상을 해보았단다. 혼자 남아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하니 30분쯤을 더 울 수 있었단다.

다시 미지 속으로 떠날 생각을 하니 새삼스럽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 목놓아 울 수 있는 옥상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싶은...











▲ 삼계탕을 위한 준비 지난달 과테말라 시티에 갔을 때 한인마트에서 산 국물재료


ⓒ 이안수




#4

당최 연락 없이 지내던 처남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소음을 낼 만한 이 없는 적막한 방에서 수화기 음이 마치 스피커폰인 것처럼 잘 들렸다.
"누나, 잘 있나?""잘 안 있을 일이 뭐 있겠나."
"그래도 궁금해서...""궁금할까 봐 매형이 블로그에 글을 써놓잖아."
"그렇지만 글로 못쓰는 일이 있을 수 있잖아.""그런 거 없다."
"간혹 한 번씩 들어왔다 나가도 되잖아?""이렇게 전화기로 통화하고 얼굴 보고하는데 뭐 하러 들어가나..."
아내는 어제 아침, 옥상에서 동쪽을 향해 한 시간을 울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한국을 떠날 때 10년쯤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은 출가한 스님들께서 속가를 방문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떠난 이유가 관광이 아니라 수행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익숙했던 관계와 루틴의 집착으로부터, 또한 가족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절할 필요를 느꼈다. 이는 도피가 아닌 발심에 따른 것이므로 가족들에 대한 애착에 휘둘리지 않는 결심을 지켜나가야 한다. 아들의 결혼식에도 귀국하지 않은 이유이다.
#5

아내는 옥상에서 내려와 마야인들이 짠 원단으로 직접 만든 치마를 입고 마야 여성들의 허리벨트를 졸라매고 가방을 멨다.











▲ 향수 시장에서 돌아오는 아내. 번다한 시장은 향수를 치유하는 곳으로도 그만이다.


ⓒ 이안수




"어디 가려 하나요?"
"시장에요."

"뭘 사게?""닭 한 마리 사려고요. 떠나려면 영양을 좀 보충해야 할 것 같으니... 지난달 과테말라 시티에 갔을 때 한인마트에서 산 국물재료가 있어서..."
이 삼계탕이 아내의 향수병을 덧나게 할지, 아물게 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맛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지어주는 미소와 함께 시장으로 향하는 아내의 발걸음이 경쾌해서 참 다행이다.
여행은 모든 이별에 익숙해지는 연습 같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