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연구자 이성민 연구교수를 3월24일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인근에서 만났다. 손에 든 것은 멧돼지 동선 파악을 위해 사용하는 무인 카메라다. ⓒ시사IN 조남진



멧돼지는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피해자인가, 가공할 위력을 가진 침입자인가. 이 질문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 이성민 연구교수(42)는 한마디로 답했다. “멧돼지는 그냥 멧돼지다.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야생동물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야생동물로 보자’는 말뜻을 다시 묻자 이 교수는 “인간과 마주치지 않을수록 좋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신화를 덧입히지도, 악마화된 프레임을 씌우지도 않고 야생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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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에서 올해 세 번째 아프리카돼지열명(ASF)가 발생한 3월 중순, ‘국내 유일의 멧돼지 전문가’로 불리는 이성민 연구교수를 만났다. 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를 확산시키고 농작물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2019년부터 4년간 35만 마리가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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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에서 무인 카메라에 찍힌 멧돼지 가족. 이성민 제공



경남 거창이 고향인 그는 유년기부터 산을 헤집고 다니며 야생동물의 털과 발자국을 쫓아다닌 ‘동물 덕후’다. 동물에 관심이 많아 생물학과에 들어갔주식시장공황
지만 대형 야생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긴 어려웠다. 야생동물 소모임에 들어가 전국을 헤매고, 방학이 되면 “어머니에게 도시락 하나 싸달라고 해서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산을 누벼왔다”.


본격적으로 멧돼지를 연구하게 된 시기는 2010년 무렵이다. “민가에 내려온 멧돼지 때문에 고향 마을에 피해고수익
가 컸다. 직접 그 피해를 지켜보면서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멧돼지 출몰로 매해 몇백억 원씩 손해가 나는데 환경부는 관심이 없고 아무도 해결책을 찾지 않더라.” 그렇게 이성민 연구교수는 한국에 전무후무한 멧돼지 연구자료를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했다.


15년 동안 멧돼지를 연구해온바다이야기 게임
그는 지금까지 멧돼지 400여 마리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지며 연구했다. 엽사가 멧돼지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전국 어디든 직접 찾아가 필요한 장기를 채집하고 연령 연구를 위해 하악골을 발골하기도 했다. 포획 틀을 직접 만들고, 마취시키고, 위치추적기를 달아 이동경로를 파악했다. 이 모든 것을 팀이 아니라, 혼자 했다. 그는 “대형 야생 포유류를 혼자, 수년간 쫓아다니며 개체 연구를 해야 하는 힘듦 때문에” 국내 멧돼지 연구의 기반이 빈약하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부족한 데 따른 문제는, 야생동물이 인간과 충돌을 일으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ASF 방역 조치도 그랬다. “정부에서 한국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2000억원을 들여 울타리를 짓고, 외국 논문에 나오는 폐사체 연구 등을 하며 예산과 자원을 썼다. 결국 방역에도 실패하고, 멧돼지도 수십만 마리가 사살됐다.” 소극적 대처를 할수록 결국 더 많은 개체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성민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자연에서는 멧돼지를 위협하는 포식자가 절멸된 데다, 멧돼지는 적응력과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성민 교수는 공적 시스템으로 엽사를 관리할 것을 제안한다. 엽사들의 무분별한 불법 사냥을 막으면서도 필요할 경우 야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계획된 개입’을 하자는 것이다.


그는 끝내 죽음이라는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았다. “동물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준다. 하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보존 정책으로 질병 확산이든 농가 피해든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환경부와 환경단체가 보여주기식 대응 이상을 고민해야 한다.” 그는 ‘동물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동물이 될 거라 믿는다. 동물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지금, 이성민 교수의 주장은 공존에 대한 공론장을 더 활발하게 만들 것이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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